[글로벌 컨퍼런스]UX/UI 디자인 유학, 실리콘밸리에서 살아남기

2022-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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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X/UI 디자인 유학,
실리콘밸리에서 살아남기




📌 이번 포스트에서는 Samsung Electronics America Visual Interaction designer 석온슬님께서 진행한 “UX/UI 디자인 유학, 실리콘밸리에서 살아남기” 세션을 소개합니다. 온슬님께서 이번 세션을 통해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에서 UX/UI 디자이너로의 전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어의 필요성에 대해 공유해 주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석온슬입니다. 저는 이번 강연에서 저처럼 영어를 막 시작하고 유학을 준비하거나 유학 중인, 혹은 이제 막 졸업을 하고 직업을 찾고 계신 분들이 공감 갈 만한 이야기를 해드리고자 합니다.




유학을 가게 된 동기


한국에서 저는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상상했던 것에 생명을 부여하는 작업은 너무 재미있었어요. 하지만 동시에 정말 힘들기도 했습니다. 오전 11시에 출근하고 다음 날 오전 2시에 퇴근하는 일이 태반이었고, 세전 연봉이 2400만 원이었어요. 월세, 관리비, 식비 등을 다 제외하니까 저축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미래가 굉장히 캄캄하다고 느껴졌어요. 저는 제 미래와 미래의 가족을 위해 유학을 가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영어의 장벽


유학을 위해서는 영어 점수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저도 바로 가장 낮은 토플 65점 반에 등록했어요. 한 달 반 정도 공부하고 시험을 봤는데 그때 점수가 47점이었어요. 유학을 가려면 학교에서 요구하는 최소 점수가 보통 80~85점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빠르게 석사를 이수하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ESL이라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 수업을 진행하고, 동시에 전공 한두 과목을 들을 수 있는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저는 무작정 신청을 했습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학교 측에서는 제 포트폴리오가 괜찮다고 평가를 해 줘서 영상 및 시각디자인 관련해 모든 과목은 wave를 시켜주었고, 덕분에 저는 석사 생활 동안 영어 수업과 UX/UI 디자인 수업에만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토플 47점짜리가 미국에서 석사 생활을 하는 것은 너무나 힘들었어요. 당시 어느 정도의 영어 실력인지 한가지 사례를 이야기해 드리자면, 미국에 살고 있던 친구가 저에게 “홀푸드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 올갱이 파니까 거기서 사 먹어”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저는 너무 한식이 먹고 싶었는데, 홀푸드라는 곳에서 올갱이를 판다는 사실을 듣고 너무 신이 났어요. 그래서 딱 갔죠. 가보니까 작은 글씨로 “organic”이라고 적혀 있는 거예요. 저는 올가닉을 올갱이로 알아듣고 올갱이 먹으러 간다고 즐거워하던, 그런 수준의 영어 실력이었어요.

그때 당시 영어로 대화를 하기보다는 주변에 있는 사물의 도움, 그리고 표정의 도움, 몸짓 발짓으로 열심히 설명했어요. 그러다가 학교에 다니면서 과제를 했는데, 매일 책 3장씩 읽고 이거에 대한 한 장의 에세이를 썼어요. 그러다 보니 방학 이후에 수업에 있는 친구들과 대화가 되는 거에요. 그때 저는 중국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저희가 문화가 비슷하다 보니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친구들이었어요. 그렇게 서로 영어를 좀 더 많이 쓰게 된 것 같아요.

석사 생활을 하면서 그렇게 따로 대단한 영어 공부를 한 게 아니라, 책을 그냥 읽으면서 그리고 라이팅을 스스로 해보면서 영어를 점점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2년 정도 지내니까 사람들이랑 팀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 정도의 영어 실력이 되었고,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수준까지 되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문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샌프란시스코 베이의 회사 문화를 잠깐 소개해 드릴게요.

먼저, 회사 초대 문화입니다. 회사 초대 문화는 말 그대로 회사에 지인들을 초대하여 밥도 먹고, 회사 투어하고 팀원들에게 친구를 소개해주는 문화입니다. 저도 친구들 따라 구글, 페이스북, 삼성 등 정말 많은 회사를 가봤는데 회사마다 그 회사의 분위기가 달랐어요. 거기에 노출될 때마다 ‘아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동기부여, 자극을 엄청나게 많이 받을 수 있었어요.

또 하나는 유그룹이라고 샌프란시스코 베이에 UXUI 디자이너들이 모이는 그룹이 있습니다. 거기서 하는 행사에 참여하면 현직자로서의 경험들을 공유하고 고충을 나눌 수 있는 곳인데, 실제 일을 하면서 필요로 하는 소스들을 많이 받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런 행사에 참여할 때, 디자이너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인상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 이벤트의 스케치 영상을 다 만들었어요. 영상 촬영부터 편집까지 하고, 사람들에게 공유하다 보니까 같은 직종의 사람들과 많은 연결점이 생겼어요. 이름만 들어도 아는 구글, 삼성, 애플 등등 이런 회사들에 계시는 분들이랑 소통하게 되고, 인맥을 쌓고, 정보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UX 디자인으로의 전환


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미국 삶은 결국 한국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조금 더 가정적이 되고 싶었는데, 모션 그래픽을 계속하면 야근의 연속일 것이 보였거든요. 재미는 있지만, 가정에 충실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UX 디자인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UX디자인이라고 일이 쉽거나 간단한 일은 절대 아니지만, 평균적인 업계 문화가 모션디자이너 보다는 야근이 적다고 들었기 때문이었어요. 근데 막상 해보니 그렇진 않더라고요.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의 경우, 커리어 변환에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에요. 지원하고자 하는 분야에서 잘하기만 한다면 이 전 커리어가 무엇이든 큰 어려움 없이 옮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편하게 직무를 옮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첫 회사는 핀테크 회사였는데 당시에 프로덕과 모션을 함께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필요했어요. 이때 저는 느꼈어요.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노력하면 기회가 만들어진다.” 좀 과한가 싶더라도 본인 어필을 열심히 하는 게 좋은 같아요. 적어도 안정되기 전까지는 말이죠.


실리콘밸리 속 UX 디자이너의 생활은 정말 즐겁고 자유로웠어요. 기한 내에 맡은 부분을 최고로 만들어 내기만 하면, 업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던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정말 힘들었던 것은 영어였어요. UX 디자인을 하면서 제가 한 디자인을 영어로 설명하는 일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어떤 의도로 어떤 것을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떤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특정 효과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했어요. 즉, 영어로 상대를 설득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제가 영어를 잘 못하다 보니 또 다른 강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회사에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의 사진을 찍고, 영상도 촬영해서 이벤트를 기록하고 팀에게 공유했어요. 그렇게 이벤트만 끝나면 항상 저를 찾아주는 co-worker들 덕분에 회사 내에서 저의 가치를 높일 수 있었어요.



다시 미국으로


미국에서 생활하던 중 제가 한국으로 돌아갈 일이 생겨서 잠시 2년 정도 링글에서 일하다가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때 저는 지난 작업들을 다 정리하고 코드화해서 웹사이트를 만들면서 준비를 했어요. 하지만 가장 큰 장벽인 영어가 남았습니다. 해결 방법으로 저는 “articulating design decisions”라는 책을 구매해서 달달 외웠어요. 내 디자인을 설명할 수 있는 최적의 문장, 단어가 있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이 책을 바탕으로 제 디자인을 설명하는 스크립트를 작성하고 자다 가도 말할 수 있도록 외웠어요.

그리고 인터뷰를 보게 되었습니다. 실리콘밸리 회사에서는 프로덕트 디자이너 기준 일반적으로 면접이 5차까지 진행됩니다. 저는 300군데 넘는 곳에 지원했고, 그 중 대략 40개 이상의 회사와 2차 인터뷰 이상을 보았고, 최종적으로 두 곳에서 최종합격 연락을 받았어요.

저는 회사를 고를 때 3가지 고려 사항이 있었습니다.

  1. Visa Sponsorship, 취업 비자를 줄 수 있는 곳인가?

  2. Industry Competitive Salary, 고연봉을 주는 곳인가?

  3. Next Career, 이 회사가 가지고 있는 프로덕과 나의 포지션은 미래의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그렇게 해서 삼성전자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삼성전자에서의 삶


그렇게 합류하게 된 삼성전자에서는 3달 동안 저에게 아무것도 안 시켰어요. 저는 그때 ‘잘리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계속하면서 긴장 속에 회사를 다녔습니다. 회사를 한 6개월째 다닐 때 저는 “No deaf, but Deaf”라는 문구를 듣게 되었어요. 소문자 deaf가 날 때부터 귀머거리인 반면, 대문자 Deaf 는 차츰차츰 귀머거리가 되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요. 저는 대문자 Deaf인 것이죠. 미국에 올 때 인터뷰까지 볼 수 있었던 실력이었는데, 막상 와서 일을 해보니까 영어가 하나도 안 들리고 점점 더 소통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 이후에는 계속 듣는 연습, 그리고 프로덕트를 이해하는 데 포커스를 두었어요. 그러다 보니 9개월 차부터 잘 들리더라고요. 결국에는 팀원들의 억양과 사람들이 말하는 방식에 얼마나 적응하는가가 제 영어 실력에서 큰 관건이었어요.


그렇게 영어의 장벽을 넘으니, 현재는 너무 만족하면서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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